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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기고] 생활물류, 혁신의 토양 다져야 할 때

<기고문, 헤럴드경제(’20. 7. 23.(목)) 게재>

생활물류, 혁신의 토양 다져야 할 때

손 명 수(국토교통부 제2차관)

택배업계가 다음달 14일을 ‘택배 없는 날’로 지정했다고 한다. 택배업이 시작된 이래 28년 만의 첫 공식 휴가다. 쉼 없이 달려온 택배 노동자들 노력 속에 택배는 대한민국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서비스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우리나라 국민 1인당 평균 택배 이용 횟수는 53.8회, 모든 국민이 일주일에 한 번꼴로 택배를 이용한 셈이다. 2000년 국민 1인당 연평균 택배 이용 횟수가 2.4회였던 것과 비교하면 반기행사나 다름없던 택배 서비스는 이제 일상이 됐다. 배달은 또 어떤가? 종류 불문, 시간 불문, 유명 맛집 음식까지 앱으로 주문만 하면 1시간 안에 받아볼 수 있다.

이처럼 물류 서비스가 일상이 되면서 우리는 택배와 배달서비스를 ‘생활물류’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도 사재기 없는 대한민국이 가능했던 것 역시 생활물류 덕분이었다. 그런데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전망에 따르면 2022년 온라인소매 거래액은 189조원에 달해, 전체 소매 거래액의 50% 이상을 차지할 것이라고 한다. 코로나19가 촉발한 비대면 사회로의 전환은 이를 더욱 가속화시킨다.

산업영역에서도 생활물류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과거 전통적 물류가 오프라인 영역에서의 상품 운반이 초점이었다면, 생활물류는 ‘가치’를 전달하는 ‘서비스의 영역’이 되었기 때문이다. “OO배송”이라 불리는 물류 서비스에 만족해서 그 물품을 주문하는 현상은 생활물류 서비스 자체가 ‘브랜드’이자 ‘마케팅 수단’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의 삶 깊숙이 스며든 생활물류가 계속해서 국민의 사랑을 받고, 국가경제에 더욱 보탬이 되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K-배송이라 불리는 훌륭한 서비스의 이면에는 하루 13시간을 발로 뛰는 택배기사의 땀방울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세계은행이 발표하는 국가 물류 경쟁력은 2018년 기준으로 25위에 불과하다.

산업 전반의 혁신을 통해 효율성과 부가가치를 높여야 한다. 특히, 도시 인근에 생활물류 인프라를 확충하고, 첨단화하는 작업이 시급하다. 현재 대규모 물류센터는 도심에서 떨어진 외곽에 있는 경우가 많다. 택배 분류장도 턱없이 부족해 기업들은 궁여지책으로 야간에 공원, 하천 둔치를 택배 분류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는 고스란히 사회적 비용이 된다. 화물차 운행거리가 길어져 대기오염을 유발하고, 장시간 근무로 교통안전에도 문제가 된다. 물류창고까지 낙후돼 있으면 택배 분류 시간이 길어져 택배가 일찍 도착하기 어렵다.

생활물류 인프라가 ‘사회 기반시설’이고, ‘국가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민간에만 맡겨두어서는 물류 인프라를 확충하기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도 어렵다. 민간의 힘만으로는 물류시설 건설을 위한 입지를 확보하기 쉽지 않고, 규제도 많기 때문이다.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기업이 영세해 자금력, 기술력 모두 부족해 첨단 설비를 도입하기란 더욱 힘들다.

따라서 정부가 첨단 물류 인프라를 확충하기 위한 마중물 투자를 해야 한다. 첨단 물류기술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에도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정부는 최근 “한국판 뉴딜사업”의 일환으로 ‘스마트 물류체계 구축’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금년 9월 착수하는 스마트 공동물류센터가 그 시작이다. 아울러, 지난 6월 ‘물류 배송·인프라 혁신 기술개발 사업’ 예비타당성조사도 통과됐다. 이를 통해 7년간 약 1천억 원의 연구개발 예산이 지원된다.

그러나 아쉽게도 아직까지 생활물류산업에 대한 법·제도적 틀이 없다. 택배는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을 통해 화물시장의 질서유지 차원에서 관리되고 있을 뿐이다. 생활물류산업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법적 근거는 부족하다. 배달은 이보다 더하다. 그야말로 제도 사각지대다. 20대 국회에서 좌초된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생활물류법)’ 제정이 시급한 이유다. 많은 사람들이 생활물류법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고 정부도 입법을 위해 이해관계자와 충분히 소통할 계획이다. 부디 업계, 노동계도 지혜를 모아 생활물류산업 전체를 위한 법안이 마련되고, 21대 국회에서 꼭 처리되기를 바란다.

생활물류법은 물류산업의 혁신과 도약을 위한 초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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