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말과 글

차관

HOME 말과 글 차관

[서울경제 기고]K-건축에서 ‘오징어 게임’이 나오려면

[서울경제 기고] K-건축에서 ‘오징어 게임’이 나오려면

이원재 국토교통부 제1차관

얼마 전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미국 방송계 최고 권위의 에미상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과 감독상을 포함하여 6개의 상을 받았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비영어권 드라마의 감독상 수상은 처음이라 하니 대단한 일이며 우리 문화에 큰 자부심을 느꼈다.

문화의 한 축인 ’건축‘을 담당하는 국토교통부의 차관으로서 부러운 마음도 든다. K-팝, K-드라마는 세계 속에서 인정받고 있는데, 우리 국토를 채우는 얼굴인 ’건축‘은 과연 어떠한가? 우리나라에 매력을 느껴 찾아올 외국인들이 처음 접하게 될 도시와 건물은 그들을 매료시킬 수 있을까?

건축을 업(業)으로 삼는 이들은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에 비하여 건축의 수준이 선진국에 비하면 갈 길이 멀다는 것에 공감한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오징어 게임’의 제작 사례를 빗대어 생각하면 분명한 한 가지가 있다. 성공적인 작품이 나오기 위해서는 전문성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민간의 창의적인 상상력 발휘가 보장되어야 한다. ‘오징어 게임’ 제작진은 자신들의 성공 요인 중 하나로 창작자를 신뢰하고 자유와 기회를 보장한 제작환경을 꼽았다.

드라마 제작사와 감독에 해당하는 건축물의 건축주와 건축사에게 창작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하기 위해 국토교통부는 허가도서 제출을 간소화하고 심의대상을 축소하는 등 제도개선을 지속해오고 있다. 아울러, 새 정부 출범 이후 전원 민간위원으로 구성된 국토교통 규제개혁위원회를 두어 건축행정 합리화를 위한 민간의 의견을 더욱 적극적으로 수렴하고 있다.

건축물은 시각적이고 미적인 요소도 중요하지만, 그 공간에서 사람들이 안전하고 쾌적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구조, 방화, 피난 등의 기준 확보를 위한 법적 규율은 창작의 자유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건축사가 사전에 게임의 규칙을 파악하고 그 안에서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객관적이고 투명한 건축기준을 마련해야 하고 허가권자인 지자체는 건축규제를 법령에 근거하여 운영해야 한다.

건축의 창의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심의절차도 합리적이고 예측 가능해야 한다. 큰 규모의 건축물을 짓는 과정에서 심의위원회마다 요구사항이 상충되거나 위원이 심의기준을 벗어난 의견을 제시한다면 건축사의 계획안이 훼손될 뿐 아니라 참신하고 개성 있는 건축물을 창조할 의욕도 저하될 수밖에 없다.

국회에서도 이런 점을 인지하여 지난 5월, 건축·주택 심의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하였으며 참석자들은 절차 간소화와 기준 명확화를 통해 예측 가능성이 높은 심의제도를 마련하고 장기적으로는 건축사에게 자율과 책임을 부여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또한, 지자체가 내부지침을 내세워 법적 근거 없는 임의규제를 운영하는 것을 감독하고 시정하기 위해 모니터링 기관을 지정ㆍ운영하는 건축법 개정안도 현재 국회에서 논의를 기다리고 있다.

건축사의 역량 못지않게 허가권자의 전문성과 책임도 중요하다. 건축 선진국으로 평가받는 미국, 프랑스, 일본은 우리보다 상세하고 명확한 건축기준을 제시한다. 허가를 담당하는 공무원들도 모두 전문자격자로서 도면을 상세히 검토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

우리나라도 건축행정과 관련해 담당 공무원이 검토하기 어려웠던 건축 허가도서의 기술적인 사항을 전문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인구가 50만 이상인 지자체에는 전문자격자로 구성된 지역건축안전센터 설치를 올해부터 의무화하였으며, 인구 50만 미만 지자체의 경우에도 단계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에 더하여 건축행정절차를 합리화하기 위해 심의 과정에서 법령 제시 기준과 무관한 의견이나 선행 심의와 상충되는 의견을 방지하고, 심의 대상과 범위가 유사한 건축심의와 경관심의를 통합하여 운영할 계획이다. 모호한 규정이나 시의성을 상실한 규제는 건축규제 혁신 방안을 마련하여 연내 발표할 예정이다.

객관적인 절차와 법령을 준수하는 범위에서 건축사가 창조적인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도록 보장한다면 우리 국토에서도 획일적인 모습을 탈피한 참신하면서 예술성을 갖춘 건축물을 더 많이 볼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새롭게 탄생할 대한민국 랜드마크들을 꿈꾸며 합리적인 행정절차 마련과 규제 완화 등 건축계의 노력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할 계획이다. 머지않은 미래에 건축계에도 ‘오징어 게임’을 능가하는 K-건축의 대표작들이 탄생하는 그 날을 기대해본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