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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을 위한 스타트업’ 그린벨트_헤럴드경제 기고(2015. 5. 20.)

2002월드컵을 앞두고 있던 5월, 필자는 마침 큰 변화를 겪고 있던 개발제한구역 제도 담당 도시관리과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1971년 지정 이후 확고히 유지되던 개발제한구역은 김대중정부에 와서 처음으로 대도시권을 제외한 중소도시권 해제가 결정됐으며, 2000년 개발제한구역법이 만들어짐에 따라 변경된 제도가 자리를 잡아가던 때다. 중소도시권 그린벨트 해제에 반대하는 환경단체, 해제지역에서 빠졌다며 항의하는 토지주들 사이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워낙 확고부동했던 개발제한구역 제도를 처음으로 수술하다보니 당시에는 해제를 하느냐 안하느냐가 최대 관심사였다. 해제 여부에 집중하다보니 주민들에 대해 좀 더 세심하게 배려하지 못한 점이 사실 아쉬웠다. 이와 같은 상황은 최근까지도 큰 변화 없이 이어져왔다.

그러나 지난 6일 제3차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개발제한구역 규제 개선방안을 발표하면서 정책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주민이 살고 있는 곳은 제도의 취지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규제를 최대한 완화하고, 나머지 지역은 환경보전 가치에 따라 맞춤형 정책을 시행키로 했다. 주민생활불편 해소라는 핵심 가치를 설정하고 국민신문고, 규제개혁신문고 등을 통해 접수된 민원을 분석해 대책을 마련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취지와는 달리 일부 해제 권한을 지자체에 위임한 것이 발표 이후 가장 큰 논란이 됐다. 앞으로 지자체장이 선거 등을 의식해 선심성 해제를 남발하게 됨으로써 환경훼손과 난개발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번 대책을 통해 지자체가 무조건 그린벨트를 해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중앙정부가 직접 심의하지 않아도 될 중소 규모 사업만 지자체가 심의함으로써 기간을 단축하려는 것이 핵심 취지다. 현재는 기본 방향만 제시한 것으로 앞으로 중앙도시계획위원회 등 전문가 의견수렴을 거쳐 구체적인 요건을 마련할 계획이다.

몇가지 안전장치도 있다. 무엇보다도 지자체에 위임된 권한은 전체 그린벨트의 6% 정도인 해제총량 내로 한정된다. 또 국토부 등과의 사전협의가 의무화돼 있으며, 2년 내 공사에 착공하지 않을 경우 그린벨트로 환원, 환경평가 1~2등급지 제외 등을 통해 무분별하고 자의적인 해제를 방지할 것이다. 국토부와 사전협의 시에는 공익성, 실현가능성, 환경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할 계획이고, 무분별한 해제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중앙도시계획위원회의 심의를 받도록 통제해 적정성을 확보하는 방안도 염두에 두고 있다.

환경평가 1~2등급지는 경사, 농업적성, 식물상, 수질 등을 고려해 결정되므로 산 정상 뿐만 아니라 임상이 양호한 평지, 수질보전 필요성이 높은 지역 등도 포함된다. 그린벨트의 79%를 차지하고 있어 환경훼손 우려가 크지 않은 사업만 추진토록 한 것이다.

이와 같은 안전장치를 통해 잘 계획된 사업은 규제 완화를 적용받아 이전과 달리 신속한 사업을 추진하고, 그렇지 못한 사업은 엄격히 심사해 해제가 쉽지 않도록 할 예정이다.

그린벨트에는 아직 약 11만명이 재산권 제약으로 고통 받으며 살고 있다. 주민들의 불편해소를 통해 ‘살고 싶은 그린벨트’로 만드는 것이 정책의 목표가 돼야 한다. 정부는 주민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있는데, 올해 11월에 조사가 완료되면 한번 더 현실에 최적화된 제도개선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우리나라 그린벨트 제도는 개발도상국 등 외국에서도 많은 관심을 가질 정도로 좋은 정책으로 평가되고 있다. 급격하게 팽창해온 우리나라 도시의 연담화를 방지하며 허파 역할을 충실히 해주었다. 이제 삶의 질, 주민들의 일방적 희생 지양 등 달라진 시대 여건 속에서 지속가능한 그린벨트 제도가 필요하다. 미래세대에게 물려줄 소중한 자산인 그린벨트. 원칙과 유연성을 조화시키며 수요자 맞춤으로 관리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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