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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기고] ‘통행료 없는 날’이 주는 깨달음(2018. 9. 20)

<기고, 동아일보(2018. 9. 20)>

‘통행료 없는 날’이 주는 깨달음

몇 해 전 도로에 누워본 적이 있다. 검은 아스팔트에 편히 등을 대고 하늘을 보고서야, 도로는 원래 사람의 것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사람을 위해 만든 도로 위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는 역설을 반성했다. ‘차 없는 날’이 준 선물이었다. 오는 추석 연휴, 전국의 고속도로가 무료로 개방된다. 우리는 ‘고속’ 도로라는 말이 무색한데도 비싼 통행료를 지불하며 명절 기분을 구겨본 경험이 있다. 지불에 상응하는 서비스가 아닌, 일종의 불공정 거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통행료 면제는 시혜(施惠)성 정책일 수 없다. 은혜가 아닌 ‘정상화’라는 표현이 공정하다. ‘통행료 없는 날’이 주는 가장 큰 깨달음이다.

국민들은 불공정 통행료를 오랜 시간 감내해왔다. 특히 민자 고속도로에 대해 그렇다. 국내 고속도로 47개 노선 가운데 18개 노선(총연장 기준 16%)이 현재 민자 고속도로다. 지난해 한국민간투자학회 정책세미나에서 발표된 사용자 인식조사나 한국개발연구원(KDI) 인식조사에서 국민 대다수(83%)는 비싼 통행료가 부당하다고 응답했다. 국민 입장에서는 민자 사업이나 재정 사업이나 같은 고속도로인데 통행료에서 큰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정부는 1990년대 후반부터 부족한 재정을 보충하기 위해 민간 자본을 활용해 고속도로를 건설해 왔다. 그러나 민자 사업이라고 재정이 투입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적지 않은 나랏돈이 들어간다. 장관에 취임한 이후 ‘동일 서비스 동일 요금’ 원칙으로 민자 고속도로 통행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 이유다.

올 3월 서울외곽북부 민자 고속도로(일산∼퇴계원) 통행료를 인하한 것은 의미 있는 출발이었다. 4월에는 서울∼춘천, 수원∼광명 민자 고속도로 통행료를 인하했다. 재정 고속도로 대비 통행료가 2.09배인 천안∼논산 고속도로 역시 인하 방안을 사업자와 협의하고 있다. 앞으로 재정 고속도로의 1.43배인 민자 고속도로 통행료를 2020년까지 1.3배, 2022년까지 1.1배 수준으로 인하할 계획이다. 차질 없이 추진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정부의 소임임은 당연하다.

공공 서비스와 기반시설은 국민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 환경이라는 점에서 모두에게 공평해야 한다. 명절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는 고속도로의 공정성과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그래서 “통행요금 0원이 정상 처리됐습니다”라는 안내 문구는 단지 요금 면제가 아닌, 국민 권리에 부응하는 정부의 다짐이기도 하다. 연휴 기간 중 23∼25일, 이용 방법은 평소와 같다. 보다 여유롭고 사고 없는 안전한 고향길 되시기를 소망한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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