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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기고] 화물운송산업 비정상의 정상화, 근본부터 바꾼다

[헤럴드경제 기고] 화물운송산업 비정상의 정상화, 근본부터 바꾼다

어명소 국토교통부 제2차관

스마트폰을 통해 상품을 주문하면 내일 바로 받아볼 수 있는 배송 서비스는 우리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 되었다. 기술의 발전도 있었지만 전국 물류현장에서 묵묵히 자기 역할을 수행하는 분들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이제 물류산업은 연 매출액 155조 원에 달하는 핵심 산업으로 발전하였다. 최근에는 로봇, 드론, AI 등 첨단기술과 결합하면서 기술 혁신과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끊임없이 창출하고 있다.

물류산업은 첨단화와 변화의 속도가 그 어느 때보다 빨라지며 영역 확장을 위한 글로벌 기업의 각축장이 되고 있다. 이미 아마존은 약 10년 전 물류로봇 업체를 인수하며 물류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그런데 국내 물류산업은 어떤가. 화물차주가 운송사의 사업권을 빌려 운송하는 지입제는 60년간 전근대적인 방식을 아직도 고수하고 있다. 정해진 운임을 주지 않으면 화주를 처벌하는 안전운임제는 OECD 국가 중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집단운송거부도 심각한 문제다.

불안하고 경직된 산업구조를 정상화해야 물류산업의 혁신도 가능하다. 뿌리 깊은 불공정 관행은 과감하게 탈피하고, 열악한 화물차주에 대한 지원도 더 살뜰히 챙겨야 한다. 정부는 지난해 두 차례의 집단운송거부를 통해 우리 화물운송 시장의 구조적 문제가 여실히 드러났다고 판단하고, 근본적인 처방을 위해 지난 6일, 화물운송산업 정상화 방안을 발표하였다. 안전운임제는 컨테이너, 시멘트 품목의 화물차주 2만 8천 명만이 대상이었지만 이번 대책은 전체 화물차주 45만 명으로 수혜 대상이 대폭 늘어난 방안이다.

지입제 개선이 최우선으로 시급한 개혁 분야다. 역대 어느 정부도 해내지 못했던 뿌리 깊은 관행을 강력한 의지로 개혁을 추진한다. 일하지 않고 번호판 장사만 하는 허울뿐인 운송사는 공정과 상식에 부합해 시장에서 퇴출시킨다. 차량의 명의도 운송사가 아닌 실소유자인 화물차주 명의로 등록하게 하여 차량에 대한 소유권을 온전히 보장한다. 열악한 화물차주들의 주머니 사정을 더욱 어렵게 한 번호판 사용료, 화물차주 소유의 차량을 교체하는 데 동의해주고 받은 대가, 명의이전 대가 등을 불법으로 명확히 규정하여 각종 부당행위도 뿌리를 뽑을 계획이다.

두 번째로,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안전운임제를 명칭부터 내용까지 전면 개편한다. 교통안전 개선 효과가 불분명한 안전운임제의 명칭을 표준운임제로 변경하고, 운수사에게 지급하는 운임을 자율화하여 운수사의 서비스 경쟁을 유도한다. 화물운송산업의 구조적 약자인 화물차주를 보호하기 위하여 차주에게 지급되는 운임은 계속 보장할 계획이다. 운송원가는 공적자료를 활용하여 객관적으로 산정하고 운임을 결정하는 운임위원회의 구조도 공정하게 개편한다.

마지막으로 열악한 화물차주의 처우를 개선한다. 유가 변동에 취약한 화물차주의 소득 불확실성을 개선하기 위해 유류비 변동 시 운임을 조정토록 하는 표준계약서를 도입한다. 정보 비대칭성으로 운임덤핑에 취약한 화물차주를 보호하기 위해 화주 운임 정보를 제공하고 화물정보망을 등록제로 개편하는 등 운송거래 과정도 투명화한다. 화물차 휴게시설과 차고지를 확충하고, 화물차주를 위한 수요맞춤형 복지사업도 확대한다.

이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운수사의 이익을 보장하던 안전운임제와 지입제를 개혁하기 위해 운수사를 설득하는 과정과 이해관계자와의 협의도 필요하다. 화물운송의 정상화를 위한 법안이 국회에서 조속히 통과될 수 있도록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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