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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기의 개발과 상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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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를 처음 발명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처음 발명부터 지금 모습의 비행기가 탄생하는 과정에 대해서 알아보아요

제 1차 세계대전과 항공기의 상업화

제1차 세계대전은 항공기 개발에 획기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전쟁 초기에는 주로 정찰용으로만 사용되던 항공기에 기관총이 장착되면서 하늘에서도 전투를 하게 되었습니다. 전투기는 점점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합니다. 전쟁이 시작된 무렵에는 연합군이 하늘을 장악하였으나, 독일의 뛰어난 전투기인 포커 아인데커(Fokker Dr. 1)가 출현하면서 사정이 달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전투기는 프로펠러 사이로 총알이 빠져 나가도록 발명한 기관총을 장착하였습니다다. 이처럼 본격적으로 사용이 되기 시작한 무렵부터 최근까지 비행기가 가장 많이 쓰이는 곳은 군용이었습니다. 그 제작 기술은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빠르게 발전을 하게 됩니다.

전쟁이 끝나면서 세계 선진 각국은 항공기의 상업화할 수 있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게 됩니다.
1920년 당시 유럽에는 20여 개의 중소 규모 항공사가 설립되었고, 미주 지역에도 내셔날 항공 등 10개 항공사가 문을 열었습니다. 유럽에서 최초로 상업적 비행에 사용된 비행기는 1919년 독일의 안네리제였습니다.
승객 8명을 태우고 6,000m 상공을 비행한 것이 상업적 항공 여객 운송의 시작이 된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상업적 항공 운송으로 가장 먼저 시작된 분야가 우편물 수송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대부분의 중소 상업 항공사들은 창설 초기, 비행기에 대한 두려움로 인해 고객이 많이 찾지 않았고, 경영 사정이 좋지 않아 거의 1년을 넘기지 못한 채 도산되는 등의 악순환을 거듭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선진 각국은 항공기의 상업화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대서양 단독 횡단과 금속제 항공기 출현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친 이후에도 세계 항공 역사에는 새로운 사건들이 꾸준히 기록되었습니다. 1919년 5월에는 미 해군 소위 팀가 수상용 비행기를 타고 대서양 횡단에 성공하였으며, 같은 해 7월에는 존 알콕 대위와 브라운 중위가 폭격기 빅커스 비미(Vickers Vimmy)를 타고 뉴펀들랜드(Newfoundland)의 세인트존(St. John’s) 섬에서 영국 아일랜드(Ireland)의 클리프덴까지 1,890마일을 한번의 중간 착륙도 없이 횡단하였습니다.

이어, 1927년 5월에는 미국의 우편물 수송 비행사였던 24세의 청년 찰스 린드버그(Char-les Lindberg)가 대서양 단독 무착륙 횡단에 성공합니다. 린드버그의 대서양 횡단은 사상 99번째였지만, 뉴욕과 파리라는 대도시를 잇는 비행이었고 거리가 3,614마일로 당시까지는 제일 긴 논스톱(non-stop)비행이었으며, 33시간 29분의 사투 (死鬪)를 벌인 단독 비행이었다는 점에서 세계 항공사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습니다.

이 횡단 비행에 사용된 비행기는 스피릿 오브 세인트루이스(Spirit of St. Louis)였습니다. 린드버그의 대서양 무착륙 단독 횡단 비행은 미국의 항공산업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습니다.

제트 여객기의 등장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제트(jet) 엔진이 개발됩니다. 1937년, 영국의 프랭크 휘틀(Frank Whittle)이 세계 최초로 제트 엔진을 발명합니다. 같은 해 휘틀의 아이디어를 빌린 독일의 한스 폰 오하인도 제트 엔진 개발에 성공합니다. 1939년에는 최초의 제트 비행기 하인켈 178기가 독일에서 개발됩니다.

이어, 1941년 영국은 글로스터 메태어 F28/37 제트 비행기를 개발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들 제트 비행기는 실험기 수준에 그쳤고 실제 사용되지는 못하였습니다. 2차 세계대전 말에 이르러 독일은 최초의 실용 제트 전투기인 메사슈미트 Me 262를 제작합니다. 이 전투기는 당시까지 최고 속도를 보유하였던 무스탕을 훨씬 능가하는 최고 시속 870km를 기록하였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1946년 영국에서는 코멧(De Havilland Comet) 1호기를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코멧 1호기는 세계 최초로 제트 엔진을 탑재한 여객기로서 시험 비행에 성공한 후, 1952년 5월 승객 36명을 태우고 시속 730km로 런던~요하네스버그 노선에 첫 취항하였습니다.

이로써 항공기는 기존의 교통 수단 못지 않는 대중 교통 수단으로서 알려지게 됩니다. 전 세계 항공업계에서는 코멧기의 시간 절약성과 경제성 그리고 정시성에 놀랐으며 , 이러한 충격은 본격적인 제트 여객기 시대의 시작이 됩니다. 또한, 1947년 10월 14일에는 마침내 항공기의 음속 돌파라는 세계 항공사의 새로운 기록이 수립됩니다. 미국의 시험 비행 조종사 척 예거 소령이 Bell-X 프로그램으로 제작된 로켓(rocket) 엔진 추진의 Bell X-1 실험기를 타고 사상 최초로 음속을 돌파하는 데 성공한 것입니다.

그러나 전 세계 항공업계를 놀라게 했던 영국의 코멧기는 첫 취항 이후 꼭 1년만인 1953년 5월 2일 캘커타에서 이륙 직후 공중 분해되는 사고가 나게 됩니다. 그로부터 4년 후인 1958년 10월 26일 미국의 보잉(Boeing)사가 개발한 B-707이 뉴욕∼런던 구간에 취항함으로써 본격적인 제트 수송기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