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말과 글

장관

HOME 말과 글 장관

[경향신문 기고] 당당한 임대주택(2017.11.30)

<기고, 경향신문(2017. 11.30)>

당당한 임대주택

국토교통부 장관 김현미

영화 <셋방살이>(1966)는 온 가족이 단칸방에서 북적이며 살아가는 빈곤을 딛고 사법시험에 합격해 평생소원이던 내집을 마련한다는 이야기를 그렸다. 1970~1980년대만 해도 셋방살이는 형편이 어렵고 불편하기는 했지만 꿈과 희망, 열정을 품고 살아가는 서민들의 당당한 삶을 상징했다.

2000년대가 되면서 세태는 완전히 달라졌다. 셋방살이의 불편은 고통으로, 꿈과 희망은 절망으로, 삶의 열정과 당당함은 냉소와 체념으로 바뀌었다. 내집이 없다는 것은 사다리가 끊어진 절벽에서의 암담함이 되었다. ‘3포 세대’에 이어 ‘5포 세대’와 ‘7포 세대’까지, ‘지옥고’에 이어 ‘이생망’까지 극단적 유행어가 만들어졌다. 젊은이들은 취업난과 주거난이 겹친 이중삼중의 고통으로 꿈마저 꾸지 못하는 세대가 되었다.

우리나라 주택보급률은 1980년 71.2%에서 지난해 102.6%로 높아졌다. 주택 재고도 532만호에서 1988만호로 늘었다. 그럼에도 집으로 인한 고통이 보편화되고 더욱 무거워진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나라 1911만가구 중 임차가구는 826만가구에 이른다. 10가구 중 4가구꼴이다. 최근 10년간 주택 재고가 368만호 증가했으나, 임차가구는 줄지 않고 오히려 111만가구 늘었다.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가 103만가구(5.4%)이며, 5분위 이하 무주택 임차가구 중 소득의 30% 이상을 임차료로 쓰는 가구가 32.8%다. 통계가 현실을 일반화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저소득층의 체감 여건은 수치보다 더욱 열악할 것이다.

국민의 주거 불안은 사회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 심리지리학자 콜린 엘러드(Colin Ellard) 등 전문가들의 말을 상세히 인용하지 않더라도 공간이 사람을 빚어내고 집에 대한 경험이 삶의 형성에 막중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에 충분히 공감하리라. 집은 행복, 창의, 안식의 공간이다. 따라서 집에 의한 불평등은 곧 행복의 불평등, 창의의 불평등, 안식의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집에 대한 절망과 체념이 클수록 근로의 욕구, 성장의 욕구, 행복의 욕구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

주거 안정은 국가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 국민의 행복한 삶을 위해 보장되어야 할 기본권이어서 인권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주거 안정은 국민들이 안심하고 학업과 생업에 전념할 수 있는 기반이기 때문이다. 취업이 결혼과 출산으로 이어지고, 저소득층이 중산층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주거사다리를 놓아 세대·계층 간 사회통합을 이루어내야 우리 사회가 희망을 품고 더 크게 더 멀리 발전해 갈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주거사다리를 골격 삼아 수요자 중심의 촘촘한 설계로 사각지대가 없는 주거복지망을 구축할 것이다. 지난 29일 발표한 ‘주거복지 로드맵’은 앞으로 5년간 추진할 주거정책에 대한 정부의 확고한 의지이며 약속이다.

세상은 4차 산업혁명과 초연결사회로 인한 공유경제를 말하고 있다. 수십년 켜켜이 각인된 집에 대한 인식도 바뀔 때다. 독일처럼 자가 소유에 집착하지 않는 ‘이상한’ 나라가 더 이상 이상하지 않게 되는 게 뉴노멀이다. 이제 집은 ‘사는(buy) 것이 아니라 사는(live) 곳’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임대주택의 역할과 영역을 확장·강화할 계획이다. 마침 국민의 인식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정부는 임대주택에 대한 부정적 편견이 선호로 바뀌도록 할 것이다. 임대주택이 기피 시설에서 유치 대상으로, 저품질에서 고품질로, 저소득 주거지에서 중산층을 포함한 모든 계층이 어우러지는 주거지로 바뀌도록 할 것이다. 불편한 곳이 아닌 편리한 곳으로, 살기 싫은 집에서 살고 싶은 집으로 임대주택의 패러다임을 바꿔 나갈 것이다.

국민이 집 없는 설움과 불편으로 현재를 고통스럽게 지내거나 집 걱정으로 미래를 희생시키는 사회는 더 이상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어갈 수 없다. 주거 안정은 국민이 누려야 할 기본권이며, 임대주택 등 공적 주택의 역할이 더욱 커져야 한다. 임대주택에 사는 것이 당당해지고, 임대주택이 첨단기술을 입어 더 스마트한 주택으로 변화되도록 정부가 역량을 쏟아야 하는 이유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