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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기고]'번호판 장사' 판치는 화물운송 시장 정상화해야

[기고](동아일보) ’번호판 장사’ 판치는 화물운송 시장 정상화해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운송사업자에게 약 3천만 원을 번호판 보증금으로 지급했지만, 계약 해지 시기가 되니까 그런 돈은 받은 적이 없다고 합니다.”, “계약해지를 한다며 차량 번호판을 절단해 무려 100일이나 운행을 하지 못했어요.”

이 내용들은 국토교통부가 지난 2월부터 실시 중인 ‘지입제 피해 집중 신고’ 기간 동안 중간 집계된 총 373건의 신고사례 중 일부이다. 이외에도 ‘번호판 사용료’를 빌미로 추가적으로 금전을 요구하는 일은 화물운송 시장에서 일상적인 일이 되었다. 벌건 대낮에 금전 갈취와 강압에 의한 영업방해가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지입제는 차량의 실소유주인 화물차주들이 자신의 차량을 운송사 이름으로 등록하고 일감을 받아 화물을 운송하는 방식이다. 우리나라에는 1960년대에 일본에서 들어왔으며, 현재는 우리나라와 대만 일부 지역에서만 유지되고 있다.

지입제는 차량 구입과 관리 비용을 절감하려는 운송사와 일감 확보가 어려운 화물차주의 이해관계가 맞아 시장에서 관행화되어 왔고, 1998년에는 공식적으로 합법화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지입제가 악용되어, 일부 운송사는 ‘운송은 하지 않는 운송사’로 바뀌었고 ‘일하지 않고 돈만 버는 악동’이 되어 버렸다.

정부는 화물차가 과잉 공급되어 운임덤핑이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운송사업권을 제한하고 있다. 그런데 일부 운송사들은 차주들을 상대로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번호판 장사’로 대가만 챙기고 운송 업무는 외면해 왔다. 이들은 차주들에게 가야 할 수입의 일부를 챙겼고, 이들이 움켜쥔 사업권은 차주들에 대한 갑질을 용인하는 무기가 되어버렸다.

일부 운송사들이 지입제를 악용하는 행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화물차주가 처음 사업권(번호판)을 빌릴 때나, 기존 차량을 다른 차량으로 바꾸려 할 때도 운송사들은 별도의 금전을 요구한다. 이러한 불공정 행위는 음성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운송사의 탈세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전국의 산업현장을 연결하는 물류는 우리 산업 전체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매우 크고 중요하다. 인체로 비유하면 혈관과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산업의 혈관인 물류가 지입제 폐단으로 생겨난 악성종양으로 인해 병들고 꽉 막혀버린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화물운송시장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지입제를 근본적으로 손봐야 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어정쩡한 개선은 약이 아니라 독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2월 6일 당정은 ‘화물운송 산업 정상화 방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번호판 장사를 비롯해, 지입계약 과정에서 운송사가 벌이는 불공정행위를 적극 차단할 것이다. 또한, 열심히 영업활동을 해 운송물량을 확보하고, 이를 화물차주에게 배정해 주어야 함에도, 영업활동은 외면한 채 번호판 사용료만 수취하는 ‘운송 없는 운송사, 일 안하는 운송사’의 운송사업권은 적극적으로 회수할 것이다. 화물차의 차량명의도 운송사가 아니라 차량비용을 부담하는 화물차주로 바꾸도록 할 것이다.

화물운송 시장을 정상화하고 불공정한 운송관행을 뿌리 뽑는 것은 국가경제의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화물차주들은 노력한 만큼 정당한 처우를 보장받고, 운송사와 차주 간 상생의 기반을 다져나갈 것이다. 이것이 정부가 발표한 ‘화물운송 산업 정상화 방안’의 최종 목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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