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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역사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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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를 처음 발명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처음 발명부터 지금 모습의 비행기가 탄생하는 과정에 대해서 알아보아요

비행 이론의 원조, 레오나르도 다빈치

사람들은 언제나 새처럼 하늘을 날고자 하는 욕망을 끊임없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도 날개를 만들어 태양을 향하여 날아올랐으나 날개를 붙인 촛농이 태양의 열기에 녹아 버리는 바람에 추락하였다는 이카루스(Icarus)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마도 사람은 이미 기원전부터 하늘을 나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가졌던 것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비행에 대한 기초적인 이론과 형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6세기 초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새가 하늘을 나는 원리를 연구하여, 새가 자기의 무게를 받쳐줄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공기의 밀도 층 위에서는 뜨게 된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이어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박쥐의 날개를 모델로 한 ‘오너솝터’를 설계하였습니다. 그는 인간이 기계적인 날개를 퍼덕임으로써 무게를 받쳐주면 하늘을 비행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남보다 앞선 연구는 에너지를 이용한 비행 원리를 이해하는 데 빠른 발전을 이룩한 것입니다. 물론, 실제 제작하여 실험을 했다는 기록은 없지만, 그의 이러한 천재적 업적은 인류의 비행 역사에 상당히 중요한 계기입니다.

사람을 태운 비행 - 열기구

그 후, 비행기는 아니지만, 인간이 실제로 기구를 타고 하늘을 날게 된 것은 18세기 말경이었습니다. 프랑스의 몽골피에 형제가 열(熱)기구를 발명한 것입니다.
종이사업 집안의 형제 조셉과 쟈크는 종이 봉투에 불을 쬐면 하늘로 올라가는 것에 착안하여 열기구 개발을 시작하여 1783년 6월 마침내 종이와 베로 거대한 기구를 만들기에 이르렀습니다. 1783년 11월 21일, 열기구를 타겠다고 지원한 물리학자 드 로제 (Rozier, F. de)와 아를란드 후작을 태운 열기구는 약 500m 높이로 9km를 25분 정도 비행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세계 최초로 사람을 태우고 비행을 한 셈입니다.

같은 해 12월, 프랑스 물리학자 샤를(Charles)은 수십 만 파리 시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신이 만든 수소(水素) 기구를 직접 타고 하늘 높이 올라갔다가 무사히 착륙하는 멋진 일을 이루었습니다. 기체의 성질을 연구하던 샤를은 공기보다 가벼운 수소의 특성을 이용하여 기구를 만드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는 점을 알아낸 것입니다.

이후 같은 해 6월, 최초의 비행 사고가 이러납니다. 샤를의 수소 기구가 도버해협 횡단에 성공했다는 소식에 자극을 받은 몽골피에 형제가 자신들의 열기구로 도버해협을 횡단할 계획을 세웠고, 수소기구와 열기구를 합하여 합체 기구를 제작하기에 이릅니다. 기구에 탄 사람은 최초의 유인 비행에 성공했던 드 로제를 포함한 두 사람이었는데, 기구에 불이 붙어 폭발함으로써 해안가에 추락,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비행선과 글라이더

기구에 의한 비행에 이어 열·수소 기구보다 한 단계 더 발전한 비행선(airship)이 등장합니다. 당시 기구는 독자적인 엔진이 달리지 않아 자유로운 조종을 하는 비행이 매우 어려웠습니다.
그 후 유럽 각국에서 활발하게 비행선을 연구·개발하였으나, 19세기 말까지도 뚜렷한 진전을 보지 못하다가 1900년에 이르러 독일의 장성 출신 체펠린(Zeppelin, F., 1838~1917) 백작이 가솔린 엔진과 알루미늄 프로펠러를 장착한 대형 비행선을 완성하였습니다.

한편, 영국의 케일리(George Caley)는 각종 실험을 통하여 비행이 가능한 날개의 모양, 크기 등을 연구하였습니다. 그리고, 새의 모형을 본떠서 하늘을 날 수 있는 글라이더를 제작하였는데, 그 모형은 오늘날 비행기의 근본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유사한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후 수십 년이 지난 1891년, 독일의 릴리엔탈(Lilienthal, 1848~1896)이 드디어 자신이 제작한 글라이더를 직접 타고 비행에 성공하였습니다. 비행의 방향을 자유자재로 조종하기 위해 글라이더에 비행키를 달아서 실험하려던 릴리엔탈은 1896년 8월 엔진이 달린 비행기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으나, 그의 노력과 집념은 훗날 라이트 형제가 동력 비행기를 발명할 수 있게 하는 기초가 되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최초의 동력비행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이론과 비행 형태가 기구·비행선·글라이더로 점차 구체화되면서 마침내 발동기 엔진을 이용한 본격적인 비행에 대한 구상이 20세기에 이르러 실현됩니다. 1903년 12월 17일,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후 최초로 인간이 동력에 의한 비행에 성공을 거두는, 당시로서는 기적과도 같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 사건의 주인공은 바로 항공기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라이트(Orville and Wilbur Wright) 형제였습니다.

이들이 가솔린 엔진(분당 1,090번 회전)으로 나무로 된 레일을 활주하여 비행에 성공한 것입니다. 랭글리(Langley) 등과 같이 현재와 비슷한 비행기를 제작하여 하늘을 날기 위한 시도가 끊임없이 지속되었으나, 인류 최초의 동력을 이용하여 사람을 태운 비행은 성공하였습니다.

미국 해안 모래 언덕에서 동생 오빌이 먼저 12초 동안 36m를 비행한 후, 형 윌버가 59초 동안 260m를 비행한 것입니다. '라이트 플라이어-1'로 명명된 이 비행기의 초기 속도는 시속 48m밖에 되지 않았으나, 이후 세계적으로 비행기의 개발 경쟁에 빠른 발전을 돕게 됩니다. 자전거 제작, 수리업을 하던 라이트 형제는 독일 릴리엔탈의 연구 자료에서 잘못 된 점을 발견, 공기 역학을 실험할 수 있는 풍동 장치를 제작하여 연구에 몰두한 결과, 플라이어 1호를 제작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플라이어 1호에는 비행기가 뜨고 내릴 때 안정적으로 조종하기 위한 조종타가 없었습니다. 이후 1호기는 4번째 비행을 한 후 추락했으며, 이어 제작한 2호기는 80회의 비행을 하였습니다. 그 중 최고 기록은 5분 4초 동안의 4.4km 비행이었습니다.

라이트 형제가 개발·제작한 비행기 중 가장 의미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플라이어 3호는 일반적으로 20마일을 비행했으며 비행시마다 30분 이상을 날았습니다. 이로써 새처럼 날고자 하는 인류의 꿈은 마침내 이루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