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토란 국가의 주권이 미치는 범위로서 국민의 생활공간이며 문화공간이다. 인간의 생활이 땅을 떠나서 살 수 없듯이 한 국가의 국민도 국토를 떠나서의 삶은 생각할 수도 없으며 일시적으로 국토를 떠나서도 항상 돌아오고 싶어하는 어머니의 품과 같은 곳이다.
- 국토의 의미와 접근방향
- 국토란 국가의 주권이 미치는 범위로서 국민의 생활공간이며 문화공간이다. 인간의 생활이 땅을 떠나서 살 수 없듯이 한 국가의 국민도 국토를 떠나서의 삶은 생각 할 수도 없으며 일시적으로 국토를 떠나서도 항상 돌아오고 싶어하는 어머니의 품과 같은 곳이다. 우리는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 살아왔으며 현재는 물론 미래에도 생활과 생산활동을 영유해 나갈 생활공간인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오랜 역사를 통해 국토를 그 특성에 맞게 개발 이용하면서 살아왔으며 그에 따라 민족의 고유한 역사와 독특한 생활양식에 맞는 문화를 창조해온 문화공간이다.
- 이러한 국토를 올바르게 이해하여 올바른 국토관을 가질 때 국토에 대한 사랑(國土愛)을 가질 수 있다.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다양한 체험이 있어야 하며, 체험을 통한 이해를 바탕으로 국토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국토에 대한 올바른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 국토관의 변화: 시대별로 본 조상들의 국토관과 그 변화
- 국토는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며 미래에 전하여 줄 공간이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국토를 어떻게 인식하고 개발 이용하며, 보전하느냐 하는 문제는 우리 세대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 미래의 우리민족의 생활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 이런 관점에서 과거 우리 조상들이 국토를 어떤 관점에서 생각하고 생활해왔으며 국토관이 어떻게 변화했는 지를 살펴보는 것도 국토를 이해하는데 의미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 a. 전통적인 국토관
- 오래 전부터 조상들은 토지를 인간생활이 이루어지는 터전인 동시에 만물이 생성되는 근원으로 믿어왔다. 이런 생각은 토지에서 필요한 물자의 대부분을 획득하는 정착 농경민에게 토지를 신성시하고 순응하는 국토관을 가지게 하였다.
- 명당 이미지 이런 국토관은 이론적으로 체계화되어 풍수지리사상으로 발전하였다. 원래 풍수지리사상은 중국에서 시작되었으나 신라 말에 도선(道詵)에 의하여 도입되고 발전하여 우리의 전통적인 국토관으로 정착되었다. 좋은 터전(=명당)을 찾는 사상인 풍수지리는 땅속의 생기가 만물을 성장시킨다는 관점을 바탕으로 음양오행설과 결합되어 발전되었다.
- 인간과 물, 방위, 산의 4가지 요소를 바탕으로 살아있는 사람의 주거지를 다루는 양택(陽宅)풍수와 죽은 사람의 거주지를 다루는 음택(陰宅)풍수로 나누어지는데 고려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적용되어 도읍지의 선정 및 생활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조선시대에 와서 유교사상과 결합하여 묘지선정에 활용되고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촌락의 입지유형을 발달시켰다.
- 그러나 이러한 전통적인 국토관은 국토의 적극적인 개발과 활용에 장애가 되기도 하였을 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그릇된 기복관(祈福觀)을 형성하는 폐단을 낳기도 하였다.
- 하지만 장소를 선정하는 입지(立地)의 개념을 서양보다 앞서 생각했으며,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자연과의 조화를 중요시하며 입지를 선정하고, 같은 장소에 사는 사람들의 공동체적 유대감을 가지게 하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
- b. 근대적 국토관
-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전쟁을 통하여 지금까지 사회를 지탱해왔던 성리학(性理學)에 대한한계를 느끼면서 중국을 통하여 들어온 서학의 영향을 받아 실학사상이 싹터 근대적이고 주체성 있는 학문이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국토에 대한 생각도 객관적이고 과학적이며 자주적인 생각을 가지게 하였고 보다 정확하고 체계 적으로 국토의 여러 사항을 연구했으며 중국중심의 세계관과 주관적인 풍수지리사상 에 대한 비판이 일어나게 되었다.
- 우리의 것을 찾으려는 많은 학자와 개인들의 노력은 당시 지배계층에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일제시대를 맞아 계속적인 연구가 되지 못해 결국 큰 성과 없이 사라지게 되었지만 서양의 지리적 지식에 들어와 종래의 편협 하던 국토인식에서 벗어나 세계적인 시야의 국토인식으로 확대 발전되는 계기가 된 시기였다
- c. 일제 감정기
- 일본에 의한 식민 통치는 우리 민족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는 물론 국토 인식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자연과의 조화보다는 식민 지배를 공고히 하고 한반도를 병참기지화하려는 관점에서 우리 국토를 바라보고, 국토를 철저히 파악하여 강제적으로 개발하였다. 또한 우리들에게 식민지 국민으로서의 순응적이고 체념적인 의식을 불어넣기 위해 우선 우리의 국토를 부정적, 소극적, 비관적으로 보도록 하였다.
- '산지가 많고 지하자원이 빈약한 땅' '갯벌이 많아 쓸모 없는 땅' '나약한 토끼 모양을 한 국토' '아시아 대륙 끝에 있어서 주변적인 땅' 등 국토의 잠재력을 소극적이고 부정적으로 보는 왜곡된 국토관적인 시각을 낳기도 하였다.
- d. 경제 개발기
- 60년대 들어와 시작한 경제개발은 우리의 생활에 커다란 전환점을 주었다. 가난과 무능력이라는 의식에서 벗어나 희망을 주고 열심히 하면 잘살 수 있다는 용기를 주었고 국토를 적극적으로 개발하여 이용함으로써 우리의 생활을 향상시키는 능동적이고 진취적인 국토관을 가지게되었다.
- 하지만 이런 관점은 개발 만능주의에 빠져 국토를 개발의 수단으로 이용하여 환경문제와 지역 간 격차가 커지는 부작용을 낮게 하였고 후손을 생각하고 미래를 생각하기보다는 당장의 이익을 우선시하여 조화와 균형보다는 개발과 변화를 우선하는 국토관의 측면도 가지게 하였다.
- e. 현재/미래
- 앞으로는 국토를 이용의 대상으로만 보는 국토관에서 벗어나 국토를 개발과 보존의 조화와 균형을 생각하는 시각으로 변해야 한다.
- 그리고 아시아 동쪽의 변두리에 있는 우리국토가 아니라 세계 교류의 중심으로 나갈 수 있는 국토라는 관점으로 우리국토가 가진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국토관을 필요하다.
- 우리나라는 북반구의 중위도(북위 33~43)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서 온난하고 4계절이 뚜렷한 기후를 나타낸다. 우리와 동위도의 나라들은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 터키, 중국, 일본, 미국 등 세계적인 문명지대와 일치하므로 인간생활에 유리한 위치라고 할 수 있다.
위치
- a. 수리적 위치
- 우리나라는 북반구의 중위도(북위 33~43°)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서 온난하고 4계절이 뚜렷한 기후를 나타낸다. 우리와 동위도의 나라들은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 터키, 중국, 일본, 미국 등 세계적인 문명지대와 일치하므로 인간생활에 유리한 위치라고 할 수 있다.
- 남북으로 긴 위도로 인해 기후의 남북차가 크고 다양한 군락이 나타난다.
- 시간대를 결정하는 경도상의 위치는 동경124°~132°에 위치하며, 우리나라는 동쪽에 위치하고 중앙경선은 동경127°30′이지만 우리보다 30분 빠른 일본의 시간대인 동경135°를 채택하여 세계표준시간인 영국의 그리니치시간(G.M.T)보다 9시간 빠르다.
- b. 지리적 위치
- 지리적 위치는 대륙, 해양과 같은 자연지물의 분포가 기준이 되는데 중위도의 대륙에 동쪽에 위치하므로 계절풍이 불고 같은 위도의 서쪽에 위치한 나라에 보다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워 연교차가 커 대륙성 기후를 나타낸다.
- 동부아시아에서 서해와 동해로 뻗은 반도에 위치하므로 대륙이나 해양과의 접촉이나 연결에 유리하여 대륙과 해양으로 발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 우리나라가 일찍 대륙문화를 받아들이고 우리의 문화를 일본에 전해준 것은 지리적 위치와 관계가 깊으며 오늘날 해안지역에 공업을 발달시키고 다른 나라와 해상무역을 통해서 경제를 발전시키는 것은 우리나라의 지리적 위치를 잘 활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영역
- 국가의 주권이 미치는 범위인 영역은 영토와 영해 영공이 있다. 우리나라의 영토는 한반도와 3400여 개의 부속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면적 약22만㎢(북한 약12.2만㎢, 남한 10.0만㎢)이다. 그동안 끊임없이 간척사업을 실시하여 면적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 최근 국토 방위와 수산자원 보호, 해저자원 개발 등으로 중요성이 날로 증대되고 있는 영해는 간조(干潮)를 기준으로 한 해안선에서 12해리 (1해리=약 1,852m 위도 1°의 1/60)로 정하고 있는데 섬이 많은 우리나라의 서해와 남해는 가장 바깥쪽에 위치한 섬을 연결한 직선을 기준으로 12해리를 정하고 있으며, 동해는 섬이 거의 없어 해안선에서 12해리로 정하고 있다.
- 대한해협의 경우 일본 영해와 중복되어 서로 협정에 의해 3해리로 규정해서 운영하고 있다. 최근 세계는 해안에서 200해리까지의 바다를 경제 수역으로 설정하고 연안국들은 이 해역내에서 이루어지는 자원 개발이나 어업활동에 대한 배타적 권리를 주장하고 있으며, 선박의 항해나 항공기의 비행을 제외하고는 영해와 같은 개념이다. 우리가 200해리를 선포할 경우 일본 및 중국의 영해를 넘게되므로 양 나라와 상호 협정을 통해서 원만하게 일을 처리해야 한다.
- 영공은 항공교통의 발달로 중요성이 높아졌으며 한 나라 영공은 그 나라의 대공 작전능력이 미치는 대기권까지 정하므로 우리나라의 영공은 우리의 대공 방어능력이 미치는 범위까지가 우리의 영공이므로 우리의 영공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주국방력의 향상이 필요하다.
- * 우리 국토와 외국과의 비교 -인구, 국민소득, 산업 등
- 북한을 합하면 세계 160개국 중에서 70위 정도로 중간정도의 크기를 가지고 있으며 실제 아주 커다란 몇 개국을 제외하면 우리의 국력을 세계에 떨치기에 작은 나라는 아니다.
- 크기와 모양
- 우리 국토의 크기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사람도 모두 작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남북한을 합하면 세계 160개국 중에서 70위 정도로 중간정도의 크기를 가지고 있으며 실제 아주 커다란 몇 개국을 제외하면 우리의 국력을 세계에 떨치기에 작은 나라는 아니다.
- 남북한을 합친 면적(22만㎢)과 동일한 면적을 가진 나라로는 라오스, 오만, 루마니아, 영국, 벨라루스, 키르키르스탄, 가나, 가봉, 기니, 우간다, 가이아나, 에콰도르, 뉴질랜드 등이며 남한(10.0만㎢)과 비슷한 면적을 가진 나라는 아랍에미리트, 요르단, 오스트리아, 유고슬라비아, 포르투갈, 헝가리, 아제르바이잔, 과테말라, 온두라스, 쿠바 등인데 남한의 인구는 4500만 정도로 이들 나라보다는 많다.
- 모양도 날씬한 한 외모와 균형 잡힌 몸매로 요즘 세대로 치면 아주 최고의 외모를 가진 나라이다. 하지만 이모든 것이 분단에 의해 허리가 잘려 외적인 모습은 물론 내적을 힘을 발휘하는 데도 어려운 형상을 하고 있으므로 안타깝다.
기후
- a. 기온
-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는 해양과 인접함에도 불구하고 대륙의 영향을 받는 대륙성 기후의 특징이 나타난다.
- 대륙성 기후가 나타나는 이유는 유라시아 대륙의 동안에 위치하여 계절풍이 불며 이로 인해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추워져 여름과 겨울의 차가 크게 나타나며, 중위도 대기권 상층에 강한 편서풍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움직이므로 동쪽에 위치한 우리나라는 대륙의 영향이 많이 받는다.
- b. 바람
- 겨울철의 시베리아 내륙에 강한 고기압이 발달하여 북서풍이 불며 이 바람은 차고 건조하므로 추위와 건조한 날씨를 나타내는데 추울 때는 한대지방과 비슷한 추위가 몰려온다. 여름철의 북태평양의 무더운 공기가 상승하면 고온 다습한 열대지방과 다름없는 무더운 날씨가 나타난다.
- 바다로 둘러싸이고 지형이 복잡한 우리나라는 각 지역마다 지방풍이 부는데 그 중에서도 늦봄에서 초여름 사이에 오호츠크해 고기압이 확장할 때 영서지방에 고온 건조한 성격을 나타내어 가뭄을 가져오는 높새바람이 대표적이다.
- 7월과 9월 사이에 열대지방에서 발생한 태풍은 강한 비바람을 동반하여 풍수해를 일으키며 통과지역에 막대한 피해를 주기도 하지만 가뭄이나 적조를 해소해 주는 생활에 이로움을 주기도 한다.
- c. 강수
- 우리나라의 연평균 강수량은 약 1200mm로 세계평균 970mm에 비하면 비교적 많은 편이며 지형이 복잡하여 지역에 따라 강수량의 차이가 크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강수량이 많고 북쪽으로 올라 갈수록 강수량이 적으며, 청천강 중상류, 한강 중상류, 남해안일대, 제주도, 울릉도는 연 강수량이 1400mm이상의 다우지이며, 개마고원, 대동강 하류, 낙동강 중상류의 경북내륙지방은 연 강수량이 1000mm내외의 소우지에 속한다.
- 한편 우리나라는 해마다 강수량의 차이가 크며 계절에 따른 강수량의 차이도 크다. 여름철은 연 강수량의 50%이상이 집중하여 생활에 큰 불편을 주며, 겨울철의 강수량은 연 강수량의 10%내외로 비교적 적으나 일부지역에서는 지형적인 영향으로 많은 눈이 내린다. 장마철이나 태풍이 지나는 경우 집중호우도 발생하여 홍수나 산사태 등 많은 피해를 주기도 한다.
- d. 계절
- 우리나라는 중위도에 위치하여 계절의 변화가 나타나는데 특히 대륙동안에 위치하여 계절의 변화가 대륙 서안보다 더욱 뚜렷하다. 여기에 우리나라 주변을 감싸고 영향을 주는 기단으로 인해 계절마다 기후의 특성이 뚜렷하게 구분된다.
- 우리나라에 영향을 주는 기단은 한랭하고 건조한 시베리아기단, 고온 다습한 북태평양 기단, 한랭 다습한 오호츠크해 기단, 온난건조한 양쯔강 기단이 주로 영향을 주며 불규칙하게 다가오는 적도기단에 의해 태풍이 불어오기도 한다.
* 출처 : 기상청, (한국 기후도 1971~2000, 북한 기후표 1973~1986)
- 1. 봄
- 한랭 건조한 시베리아 기단의 세력이 약화되면 온난건조한 양쯔강 기단의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면 온난하고 건조한 날씨가 나타나지만 시베리아 기단이 다시 확장하면 꽃샘추위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동성 고기압과 저기압이 교대로 통과하면서 날씨변화가 심하며 공기가 건조하여 산불이 나기 쉽고 가뭄이 종종 발생한다. 중국의 화북지방에서 상승한 황사가 편서풍을 타고 우리나라를 지나면서 황사현상이 나타난다.
- 2. 여름
- 건조한 봄이 지나고 고온 다습한 북태평양 기단과 한랭 습윤한 오호츠크해기단 사이에 형성된 장마전선이 오면서 여름이 시작되는데, 집중호우와 높은 습도, 불쾌지수가 높았던 장마가 지나가면 본격적인 한여름의 무더위가 시작된다. 가끔 더위를 식혀주는 소나기가 내리기도 하지만 한밤에 기온이 25℃가 넘는 열대야를 나타나기도 하며, 열대성 저기압인 태풍이 상륙하여 풍수해를 일으키기도 한다.
- 3. 가을
- 시베리아 기단이 발달하고 여기서 분리되어 나온 이동성 고기압에 의해서 아침저녁으로 기온이 낮아지고 청명하고 맑은 날씨가 된다. 가끔씩 지나가는 태풍이나 가을장마를 제외하면 결실하기에 좋은 날씨가 지속된다.
- 4. 겨울
- 한랭 건조한 시베리아 기단이 세력을 확장하면서 차가운 북서풍과 한파가 몰아친다. 일부지역에서 시베리아 고기압이 약화되면 이동성 저기압이 통과하며 일부 지역에 지형적 영향으로 폭설이 내리기도 하며 시베리아기단이 약화되거나 제트기류의 영향에 의해 며칠동안 따뜻해지는 삼한사온(三寒四溫) 현상이 나타난다.
- 우리 조상들이 가장 견디기 어려운 계절이었 지만 솜옷, 온돌, 김장, 남향집 등 현명한 방법으로 기후환경에 적응하였다.
식생
- a. 기온
- 우리나라는 남북의 위도가 길고 지형이 복잡하며, 강수량이 풍부하므로 다양한 식물이 분포한다. 식물의 종류는 3600여종에 이르며 이 가운데 수목이 900여종, 특산 산물도 500여종이나 된다. 우리나라의 산림은 전쟁과 남벌로 인하여 원형대로 남아있는 경우는 거의 없고 현재 관찰되는 삼림은 대부분 2차 식생이다.
- 강수량이 많은 우리나라는 강수량보다는 기온의 분포에 의해서 식물의 분포가 달라지는데 기온이 위도에 따라 달라지므로 우리나라의 식물대는 위도에 따라 식물의 분포가 달라지며 남쪽에서 북쪽으로 가면서 난대림, 온대림, 냉대림의 순서로 나타난다. 난대림은 1월 평균기온이 0℃이상인 남해안과 제주도일대에 분포하며 주요수종은 상록활엽수인 동백, 사철나무, 후박나무 등이다.
- 온대림은 남해안과 개마고원을 제외한 한반도 전역에 분포하며 낙엽활엽수림과 침엽수림의 혼합림으로 이루어져있고 참나무, 굴참나무, 신갈나무, 상수리나무, 물푸레나무 등이 있다. 냉대림은 개마고원과 고산지대에 분포하며 가문비나무, 측백나무, 구상나무, 떡갈나무 등 침엽수림의 단순림으로 이루어져 좋은 임산자원이 된다. 기온은 해발고도에 의해서도 달라지므로 높은 산지에서는 평지에서 정상을 가면서 식물의 분포가 달라지는데 수직적인 식물의 변화가 잘 나타나는 곳은 제주도이며 북으로 갈수록 냉대림의 분포고도는 낮아진다.
토양
- a. 기온
- 토양은 오랜 시간에 걸쳐 암석의 풍화에 의해서 형성되며 기후, 식생, 암석 등 여러 인자에 의해서 특성이 결정된다. 우리나라의 토양의 대부분은 암석의 풍화물이 제자리에서 토양으로 발달한 정적토(定積土)가 많으며, 화강암이 넓게 분포하여 모래가 많이 섞인 사질 토양이 많고, 화학비료의 남용과 많은 강수량으로 유기질 성분이 적은 산성화된 토양이 많다.
- 기후의 영향을 받아 추운 곳에서는 회백색의 토양이 발달하며 더운 곳으로 갈수록 적색의 토양이 되어 우리나라 대부분은 그 중간이 갈색의 토양이 대부분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암석의 영향을 받아 강원도 남부에 적색의 석회암의 풍화토, 화산지형이 나타나는 강원 철원, 제주도, 울릉도 등에는 검은색의 현무암이 풍화된 토양이 분포한다.
- 한편 하천유역과 일부 해안의 저지대에는 바람과 유수의 운반·퇴적에 의해 형성된 충적토가 분포하며 토양이 비옥하여 농경지로 이용된다.
지형
- a. 지각운동
- 한반도의 암석분포를 보면 깊은 지하에서 변성된 편마암이 40%이상이며, 마그마가 지각을 뚫고 올라오면서 식어 암석이 된 화강암이 30%정도로 비교적 안정된 땅덩어리라는 것이다. 나머지 고생대이래 퇴적암이 20%이고 나머지는 화산분출에 의한 화산암과 충적평야 등으로 되어있다.
- 고생대의 해침과 해퇴가 있어 평안남도 지역과 소백산맥 서사면 일대 지역이 바닷물 속에 잠긴 후 이 지역에서는 석회암과 무연탄이 많이 매장되어있다. 중생대에 한반도 전체에 최대의 지각운동이 일어나 랴오뚱(북동동-남서서)과 중국(북북동-남남서) 방향의 지질구조가 형성되었고 땅속에 화강암의 관입 작용이 있었다.
- 신생대 제3기에 들어와 횡압력이 동쪽의 태백, 낭림, 함경, 소백 등 1차 산맥이 형성되었으며 이 결과 동해쪽 사면은 급경사를 이루고 서쪽을 가면서 완경사를 이루는 비대칭의 사면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 후 서쪽으로 흘러가는 하천에 의해서 약한 부분이 침식되었고 침식이 덜된 상대적으로 높은 부분이 산맥이 되어 오늘날 랴오뚱 방향과 중국방향으로 2차 산맥이 형성되었는데 2차산맥은 서쪽으로 오면서 낮아지고 연속성이 뚜렷하지 못하다.
- 신생대 제3기와 4기에 걸쳐 화산활동이 백두산, 울릉도, 제주도, 철원일대에서 일어났으며 이 지층은 분포면적이 좁아 함경도 일대에 갈탄이 약간 매장되어있으나 석유등의 자원은 적게 매장되었다.
- b. 산
- 전국토의 70%를 차지하는 산지는 형성된후 큰 지각변동을 겪지 않고 오랜 침식을 받아 비교적 낮고 경사가 완만하다. 평균 해발고도가 482m로 아시아 평균 960m보다 낮으며 1000m이상의 높은 산지는 북동부지역인 개마고원과 한반도의 등줄에 비유되는 함경, 낭림, 태백산맥 등에 발달했으며 이로 인해 대부분의 하천은 서해와 남해로 흘러간다.
- 서남부 지역은 비교적 낮은 산지들로 형성되어있는데, 동쪽이 높은 산지가 연속되어 우리의 생활에 영향을 주어 동서간의 지역차, 문화의 차이, 기후의 차이를 가져왔으며 대부분의 교통로도 동서방향보다는 남북방향으로 발달하였다.
- 함경산맥이나 태백산지의 정상부근에 평탄한 지형이 형성되어 있는데 이러한 지형을 고위평탄면이라고 부르며 대관령과 같은 일부지역에서 여름의 서늘한 기후를 이용해서 고랭지 농업과 목축업 스키장 등으로 이용된다.
- c. 하천
- 중생대의 지각운동과 신생대의 동쪽의 융기에 의해 대부분의 하천은 황해와 남해로 흘러가고 황해로 흐르는 하천은 유로가 길며 유량이 많고 유속은 느리며, 동해로 흐르는 하천은 유속은 빠르지만 유로가 짧고 유량은 적다.
- 우리나라의 기후가 여름철에 많은 비가 내리기고 유역면적이 좁아 최소유량에 대한 최대유량의 비율인 하상계수가 매우 크며, 높은 하상계수는 홍수, 용수확보, 수력발전, 하천교통 등의 많은 어려움이 있다. 대부분의 하천이 곡류하천을 이루고 있으며 그 결과 평야지대를 흐르는 곡류하천에서 홍수가 빈번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일찍부터 제방공사와 직강(直江) 공사로 범람을 방지하고 있다.
- 모든 하천이 조수간만의 차로 인해 밀물 때 바닷물이 강으로 역류해 들어오는 감조(感潮)하천이 대부분이다. 이 하천은 조수간만의 차가 크고 경사가 완만한 서해안과 남해안에 특히 발달하는데 여름철의 홍수와 바다의 밀물과 만나 범람하게 되면 염분의 물이 넘쳐 주변 농작물에 염해를 일으킨다. 서해안의 평야지대는 일찍부터 이러한 피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방조제를 건설해왔으며 최근에는 강의 본류를 직접 막는 하구둑도 낙동강, 영산강, 금강, 대동강에 건설해 놓았지만 하천의 오염을 초래하기도 하였다.
- d. 평야
- 우리나라의 평야는 대부분 황ㆍ남해로 흐르는 대하천의 하류 유역에 넓게 발달하며, 동해안은 해안에 소규모의 평야가 발달하고 있다. 오랜 침식에 의해 평탄해진 침식평야가 하천에 의해 운반된 퇴적물이 쌓여서 만들어진 충적평야보다 더 넓은 분포를 나타낸다.
- 내륙지역에는 계곡을 따라 하천에 의한 침식ㆍ퇴적으로 형성된 곡저평야가 발달하며, 화강암 분포 지역의 하천 합류 지점에서는 침식분지가 발달한다. 산으로 둘러싸여 방어와 풍수지리적으로 좋은 이곳은 물이 풍부하고 농업은 옛날에는 수운교통의 요지로 취락이 발달하기 유리하며 더 나아가 도시까지 발달하여 우리나라의 내륙에 위치한 대부분의 도시들은 침식분지에 자리를 잡은 경우가 많다.
- 서부의 낮은 산지 일대에는 침식에 의해 만들어진 구릉성 침식지가 만들어지고 밭, 과수원, 목장, 임야 등으로 이용되며 하천을 따라 충적평야가 만들어지는데 곡류하며 흐르던 하천이 범람하여 범람원을 형성한다. 하천 양안에 형성된 배수가 잘되고 지면이 높은 자연제방에서는 취락이 입지하고 밭농사가 행하여지며 배수가 잘안되는 배후습지는 배수시설이 만들어진 후 논으로 이용된다.
- 해안에의 하구에는 조수간만의 차가 작은 낙동강 같은 경우는 김해평야와 같은 삼각주가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조류가 퇴적물을 바다로 쓸어 가기 때문에 대부분은 갯벌이 넓게 발달하고 일부지역에서는 갯벌을 육지화 시켜 간척지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 e. 해안
- 우리나라 해안은 마지막 빙기가 끝나고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현재의 수준에 도달한 약 4000년 전부터 형성된 지형이다. 동해안의 산맥은 해안선에 평행하고 높은 산지로 이루어져 해안선이 단순해졌고 황해안은 산맥이 해안선 방향으로 향하고 낮은 산지가 반도와 섬이 되고 산맥과 산맥사이에는 만이 되어 굴곡이 아주 심해 해안선이 복잡하게 되었다. 동해안은 조류작용이 거의 없고 활발한 파도의 작용에 의하여 여러 해안지형이 만들어졌으며 반면에 서해안은 조류의 영향을 많이 받아 해안지형이 형성되었다.
- 서해와 남해는 해안의 굴곡이 심하고 하천으로부터 공급되는 퇴적물의 양이 많고 입자도 작을 뿐만 아니라 조류작용이 강해 간석지가 넓게 발달하여 일찍부터 어패류의 양식장으로 이용되고 최근에는 농경지, 주거용지, 공업용지로 간척지가 된 곳이 많다. 바다로 돌출된 곳에는 파도의 침식에 의해서 형성된 사빈이 발달하여 해수욕장 등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겨울에 강한 북서풍의 영향으로 모래언덕인 사구가 발달하여 모래로부터 경지를 보호하기 위해 마을과 농경지 앞에 방풍림(防風林)과 방사림(防沙林)을 조성하기도 하였다.
- 동해안은 경사가 급하고 유속이 빨라 침식된 운반물질을 그대로 운반하여 모래질의 사빈 해안이 형성되었으며 하천이 바다로 흘러가는 소규모의 하천 하구가 모래로 막혀 경포호, 영랑호, 청초호 등의 호수가 형성되었다. 산지와 구릉지가 해안과 접하고 있어 파도침식에 의해 생기는 절벽이 잘 발달하고 지반의 융기와 해수면 변동에 의해서 계단모양의 단구지형이 발달하여 단구면 위로 교통로나 취락이 발달하고 동해의 삼척이남 부근과 포항의 장기갑 등에서 볼 수 있다.
- f. 해양
-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에서 바다는 자원의 공급원으로 뿐만 아니라 교통로로 매우중요한데 동해는 수심이 평균 1700m로 깊고 조수간만의 차가 작으며, 염분의 농도가 높다. 또한, 난류와 한류가 만나 조경수역을 이루고 이로 인해 어족자원이 풍부해 어업에 유리하다.
- 서해는 수심이 평균 44m로 얕으며 대륙붕이 넓게 발달하여 어족자원과 지하자원의 개발로 기대가 되고 조수간만의 차가 큰 것을 극복하기 위해 인천항에 갑문식(閘門式) 독, 군산항의 뜬다리 부두 등을 설치하여 사용하고 있다. 염분의 농도가 얕고 북서풍과 앝은 수심으로 겨울의 수온이 낮아 고기가 잘 잡히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 남해는 평균 101m의 수심에 대륙붕이 발달하며 연중 난류의 영향으로 수온이 일정하고 양식업과 다양한 어종이 잡혀 최대의 어장이다.
- 북한을 합하면 세계 160개국 중에서 70위 정도로 중간정도의 크기를 가지고 있으며 실제 아주 커다란 몇 개국을 제외하면 우리의 국력을 세계에 떨치기에 작은 나라는 아니다.
에너지자원
-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땔나무와 숯인 신탄(薪炭)에 의존해왔으나, 1930년대 이후부터 석탄과 수력전기를 본격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하였다. 1960년 경제개발이 시작되면서 에너지의 수요가 증가하여 석탄이 중심이 되었다. 1970년대 이후 산업의 고도화와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석유중심으로 전환하였고 80년대 이후 원자력과 천연가스가 도입되어 비중이 증가하면서 에너지원이 다양해지고 있지만 여전히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석유이다.
- 최근 에너지 수요가 급증해서 동력자원의 수요가 늘고있지만 대부분 외국에서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수입량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석탄의 일종인 무연탄은 남북한 양쪽에 비교적 풍부히 매장되어 있고 남한에서는 현재 태백탄전지대에서만 생산되고 있다. 산업용으로 중요한 역청탄은 매장이 없어 전량수입하고 있으며 석탄액화공업에 사용되는 갈탄은 북한의 함경도 지방에 매장되어 있고 남한에는 소량 매장되어 있으나 경제성이 적어 생산하지 않고 있다. 최근 가정용 연료가 석유나 천연가스로 대체되면서 무연탄의 채탄량이 크게 감소하고 있다.
- 석유는 열효율이 높고 수송이 편리하며, 각종 화학공업의 원료로 매우 중요하지만 우리나라는 석유를 함유하고 있는 신생대 제3기층의 발달이 미약하여 석유를 생산하지 못하고 있는데 최근 대륙붕에서 활발한 탐사가 이루어져 기대되고 있다. 석유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 인도네시아, 예멘, 베트남 등의 해외유전을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 천연가스는 최근 울산앞바다에서 천연가스 층이 발견되어 실용화단계에 있지만 대부분을 인도네시아에서 수입하여 일반연료 및 발전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산업용 발전소는 1929년 함경남도 부전강 발전소가 처음이며 이를 시작으로 광복당시 40여 개의 발전소에서 200만㎾의 발전설비용량을 갖추었지만 90%이상 북한에 분포하였고 수력발전소가 대부분이었다. 해방후 북한의 송전중단과 6.25전쟁으로 심한 전력 난을 겪은 후 화력발전 중심으로 전력개발에 힘써 1964년부터 무제한 송전이 가능하게 되었다.
- 전력수요의 증가로 대단위 발전소가 건설되었고 1977년부터 원자력 발전소가 건설되어 현재 총발전 설비용량은 4700만㎾에 이르고 있다. 수력발전소는 북한강 수계와 낙동강 상류, 금강 상류 등에 입지만 많은 건설비와 수몰지역의 문제 등이 있으며, 화력발전소는 원료 수입이 용이한 소비지 부근인 수도권, 남동해안지역, 당진, 태안 등지에 주로 분포하며 낮은 건설비와 짧은 건설기간의 장점이 있으나 환경오염과 원료의 수입 등이 문제점이다.
- 원자력발전은 발전단가는 저렴하지만 방사선 폐기물의 처리에 따른 환경문제와 사고 등의 위험으로 입지선정의 어려움이 있으며 냉각수 확보를 위해 해안지역인 고리, 월성, 영광, 울진 등에 위치하고 있다.
지하자원
- 우리나라는 '광물의 표본실' 이라고 불릴 만큼 광물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매장량이 매우 적고 채굴조건도 불리하다. 그나마 있는 자원도 지역적으로 편재하여 주요 자원은 북한에 집중되어 있으며 남한에서도 태백산 지역에 집중하고 있다.
- 최근 국내에 분포했던 일부 광물도 채광비의 증가와 값싼 외국광물의 수입 증가로 국내생산이 줄어들고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우리나라는 고생대 이전의 지층과 화강 편마암계 암석이 널리 분포하여 금, 철광석, 텅스텐, 흑연, 마그네사이트, 구리 ,규사, 석회석 등의 다양한 지하자원이 보존 되어 있는데 텅스텐, 흑연, 석회석 등의 제외하면 경제적 가치가 적다. 그나마 산업발전에 중요한 백금, 주석, 니켈, 다이아몬드, 보오크사이트, 황 등은 매장이 전혀 없다.
산업
- a. 농업
- 우리나라은 신석기 시대에 화북지방에서 농경문화가 전래되어 잡곡, 맥류 등의 재배가 이루어 졌으며 삼한시대에는 이미 벼농사가 시작되었다. 삼국시대에 들어와 철제농기구의 보급과 남부지방에서 벼농사와 관련된 벽골제 의림지 등의 저수지를 축조하였고 동맹, 영, 한가위 같은 농업관련 행사를 성대하게 치렀다. 고려시대에는 농업의 기술이 더욱 발전하여 그루갈이와 계단식 경작이 이루어졌고 보(洑)를 축조하여 관개시설을 확대하였으며 밭작물의 경우 2년3작이 실시되어 식량이 획기적으로 증가하였다.
- 농본주의 정책을 실시한 조선시대에는 각종 농업 관련 서적이 발간되었고 이앙법이 확대되고, 고구마 토마토, 고추 담배, 감자,옥수수,호박등 외래 작물이 도입되었다. 일제시대에는 토지조사사업과 간척사업등 식량증산 계획이 추진되었으나 이는 우리나라를 식량기지화 하고 농산물을 수탈하기 위한 것이었다. 농업의 본격적인 근대화는 1960년대 이후 추진되어 수리시설의 확대, 경지정리, 농업의 기계화, 상품작물의 재배확대 등이 이루어 졌다. 그러나 최근 세계의 자유 무역화 시대를 맞아 농산물 수입이 개방되면서 우리나라 농업은 새로운 어려움에 처해있으며, 이것을 슬기롭게 해쳐나가야 할 시기에 처해있다.
- 우리나라 기후에 알맞은 벼는 개마고원 지역과 고산지역을 제외하고는 전국에서 재배가 가능하다. 1976년 500만톤을 넘어서 자급을 달성하였으며 이것은 다수확품종의 개발과 재배면적의 확대에 기인한다. 그러나 90년대부터 유휴농경지의 증가와 상품작물의 재배가 늘면서 배의 재배면적은 크게 감소하였다.
- 맥류는 수익성이 떨어지고 노동력이 부족하여 소비량과 생산량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으며, 겉보리(大麥)는 경북지방이 쌀보리(裸麥)는 전남지방에서 많이 생산된다. 밀은 보리보다 냉량건조한 조건을 선호하므로 북부지방이 주산지이나 남한에서는 수익성이 낮아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채소, 과일, 화훼등의 원예작물은 인구의 증가와 경제발전에 따라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수요가 증가하여 재배면적이 많이 증가하였고, 주로 수도권과 대도시 주변의 근교농업 형태로 재배되며 교통의 발달과 함께 유리한 자연조건을 이용한 대관령, 김해평야, 제주도에서 원교농업(遠郊農業)의 형태로 행하여진다.
- 과일은 기후조건의 영향을 많이 받아 지역적으로 특화되어있으며 사과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국적으로 재배가 가능하나 대구주변과 경북 의성, 안동 충북 충주, 음성 충남의 홍성, 예산이 주산지이며 북한에는 황주, 함흥 등지가 사과산지로 유명하다. 배는 서울주변과 평택, 나주가 주산지이며, 난대성 과일인 귤은 제주도, 포도 복숭아는 대도시 주변에서 주로 생산된다.
- 세계적으로 알려진 약용작물인 인삼은 개성, 강화, 풍기, 금산 등이 주산지이나 최근 연작(連作)의 어려움으로 재배지가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담배는 경북 영주, 영양 충북 충주 등 산간지역에서 주로 재배된다. 축산업은 기후조건의 불리함과 살생을 멀리한는 문화적인 전통으로 부진했으며 최근 소득증대에 따른 식생활의 개선으로 목축업은 수요가 증가하고 있으며, 농가의 부업이 아닌 전업 또는 기업적인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 그러나 선진국에 비해 규모가 영세하고 사료의 자급도가 낮아 경쟁력은 낮은 편이다. 1960년대 초 서울에 우유가공공장이 세워지면서 시작된 낙농업은 부가가치가 큰 산업으로 소비시장이 인접하고 교통이 편리한 곳을 따라 발달하며 현재 서울을 중심으로 한 경기도 일대에 젖소의 50%이상이 집중하고있으며 낙농품 수요의 증가로 비약적인 발전이 기대된다.
- 우리나라 경지면적이 적은데 비하여 인구밀도가 높아 농가 1가구당 경지면적이 작지만 좁은 농토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소득을 올리기 위해 노동력과 비용을 많이 투자하는 집약적 영농을 실시하여 토지 생산성은 매우 높다. 생활수준의 향상과 기술, 교통의 발달로 자급적인 농업에서 상업적인 농업으로 변화했지만 밀, 콩, 옥수수 등의 작물 수입이 늘어 식량의 자급도는 낮다.
- 전반적으로 농업의 비중이 감소하고 있고 농촌에서도 교통의 발달로 겸업을 하는 비율이 늘어나 농업외 소득이 증가하고 있지만 이촌향도 현상으로 농업인구가 감소하여 1가구당 경지면적이 증가하고 농업의 기계화가 추진되고 있으나 농촌의 생활 환경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앞으로 우리 농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경영규모를 확대하고 영농의 기계화와 과학적 영농으로 생산성을 더욱 높여야 한다. 또한 작물 재배 지역을 특화하고 품질을 차별화 고급화 시켜 외국농산물 수입에 대응하고 농촌의 생활환경을 개선하여 젊고 유능한 농업인력의 농촌 정착을 유도하는 것도 중요하다.
- b. 임업
- 우리나라의 임야면적은 전국토의 약73%이고 남한의 임야는 약 650만㏊로 남한 면적의 65%에 해당되나 공업화, 도시화에 따라 점점 감소추세에 있다. 일제 강점기와 6.25를 거치면서 삼림이 많이 파괴되었으나 1960년대 이후 적극적인 조림정책과 에너지 자원의 전환으로 많이 증가하였다. 임상(林相)별로 보면 침엽수림이 절반을 차지하고 혼합림, 활엽수림의 순이며 소유별로는 사유림, 국유림, 공유림의 순이다.
- 국토 면적에 비해 임야가 높은 비중을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임업 생산량은 국민 총생산의 1%이하로 매우 낮으며 수요의 대부분을 외국의로부터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앞으로 국내 경제림의 확대와 외국에서의 임산물 개발도 필요하다.
- c. 수산업
-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는 길고 굴곡이 심한 해안선과 황해와 남해의 넓은 대륙붕과 간석지, 동해의 난류와 한류의 교류등 수산업 발달에 유리한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다. 수산업 가구 수는 총 가구수의 1%에 불과하며 반농반어의 겸업가구가 80%이상으로 전반적으로 영세한 편이고, 수산물 생산의 중심을 이루던 연 근해 어업은 어족자원의 고갈로 그 비중이 점차 낮아지고 있으며 원양어업은 정체하고 수산 양식업의 비중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최근 어업기술의 발달과 어선의 현대화,대형화, 원양어업의 진출과 양식업 비중의 증가로 어획고와 수산물 수출에서 세계10권에 드는 수산국으로 발전하였다.
- 동해는 명태, 대구 등의 한류성 어족과 오징어, 꽁치, 고등어 등의 난류성 어족이 잘 잡히며 남해는 연중 수온이 높고 해안선이 복잡하여 어족의 좋은 번식장소가 되어 어획량이 가장 많다. 멸치, 가자미, 방어, 고등어, 도미 등이 주로 잡히고 김, 미역, 우뭇가사리 등의 해조류와 굴, 바지락, 홍합, 등의 조개류가 양식되고 있다. 황해는 넓은 대륙붕과 간석지를 가지고 있어 유리하나, 겨울철에 수온이 낮아져 휴어기(休漁期)가 되는 등 다른 해역에 비해 어획량이 적다. 최근 내륙의 하천과 중국에서 막대한 오염물질이 유입되어 타격을 입고 있으며 주요 어족으로는 갈치, 새우, 도미, 넙치 등이다.
- d. 공업
- 우리나라의 공업은 원료가 있는 지역에서 다양한 생활도구를 소규모의 가내 수공업 형태로 만드는 재래공업이 시작이다. 이런 수공업 형태에서 벗어나 공장제 공업으로 발전한 것은 1910년 이후 일제 강점기 이후이다. 초기의 소비재 중심의 경공업에서 1930년대 이후에는 한반도를 대륙침략을 위한 병참기지화로 이용하면서 중화학 공업이 발달하게 되었다.
- 광복후 대부분의 산업시설이 북한에 편재되고 6·25를 거치면서 공업시설이 파괴되어 남한의 공업은 발달이 부진하였다. 휴전후 산업재건이 이루어지면서 수입대체를 위한 내수형 소비재 가 생산되었고 전력, 비료, 시멘트, 플라스틱, 정유 등의 산업이 형성되었지만 매우 낮은 수준이었다.
- 1960년대 경제개발개발 정책후 섬유, 의류, 신발 등 내수용 경공업을 육성하고 70년대 들어서면서 석유화학, 기계, 제철, 조선, 자동차등의 중화학 공업이 발달하였고 1980년대 이후 컴퓨터, 반도체, 생명공학 등 첨단산업이 발달하면서 세계적인 신흥공업국으로 발달하였다. 우리나라의 공업은 풍부하고 우수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원료의 해외의존도가 높은 가공형 공업이 발달했으며 그로 인해 대부분의 공업이 수출입에 편리한 임해지역에 입지 한다.
- 노동집약적인 경공업에서 자본집약적인 중학학 공업을 거쳐 최근에는 기술지식 집약적인 첨단산업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소수의 대기업이 공업생산액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공업구조의 이중성과 공업지역의 수도권과 남동지역에 편재하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 e. 공업지역
- 우리나라 공업지역은 사회간접자본이 유리한 수도권과 남동임해지역으로 발달했으며 이 지역은 공업생산액의 3/4이상을 차지하는 핵심지역이며 충청, 호남, 태백산 공업지역은 공업의 집적이 상대적으로 낮아 공업의 지역적 편재가 심하게 나타난다.
- 1. 수도권 공업지역
- 우리나라 최대의 종합 공업지역으로 전체공업생산액의 절반정도를 차지한다. 대규모 시장, 고급인력, 연구개발시설, 노동력, 교통 등 입지조건이 좋으며 최근에는 너무 집적되어 중서부와 서해안지역으로 분산이 되고있는 추세이며 핵심지역은 서울, 인천, 안양, 부천, 수원 등이다.
- 2. 남동임해 공업지역
- 최대의 중화학 공업지대로 조선, 자동차, 철강, 정유, 석유화학 등이 발달하며 원료의 수입과 수출에 편리한 항구 등의 입지조건을 가지며, 지역별로 전문화와 계열화가 되어있다. 핵심지역은 포항, 울산, 부산, 창원, 마산, 여수 등이다.
- 3. 충청 공업지역
- 대전, 천안. 청주 등 경부·호남선의 철도와 고속도로가 만나는 교통의 편리함을 바탕으로 발전한 지역으로 최근 수도권에서 분산 수용된 공업이 입지 하는 경우가 늘고 있으며 최근 대덕연구단지의 개발로 정보기반시설을 바탕으로 한 첨단산업과 서산,당진등의 석유화학 제철공업이 들어서면서 발달이 가속화 될 것으로 기대된다.
- 4. 영남내륙 공업지역
- 풍부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대구의 섬유와 구미의 전자공업이 대표이며 최근 인건비의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고 다른 산업으로의 개편이 필요한 지역이다.
- 5. 호남 공업지역
- 배후지의 풍부한 노동력과 항구조건을 바탕으로 정미, 식품, 섬유 등의 경공업이 일찍부터 발달했으나 교통의 불편과 위치적인 불리함으로 큰 발전은 하지 못했다. 최근 중국과의 교역의 증가와 국토의 균형발전과 서해안 고속도로의 개통으로 제2의 임해공업지대로 부상하고 있다.
- 6. 태백산 공업지역
- 태백산 공업지역 풍부한 지하자원으로 원료를 바탕으로 하는 공업이 발달하였으나 교통이 불편하고 소비시장과의 거리가 멀어 공업의 비중이 낮고 공업지역의 형성이 뚜렷하지 못하다.
인구
- 우리나라는 조선시대까지는 출생률이 높고 전염병과 자연재해, 기근 낮은 토지 생산성으로 인해 사망률도 높아 인구성장률은 높지 않았다.
- 일제강점기에는 서양의학의 보급과 위생시설의 개선으로 사망률이 감소하고 농경지 확대와 식량증산으로 인구부양력도 증가하여 인구는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1925년 1950만의 인구가 1944년 2590만 명으로 증가하였다.
- 해방후 월남동포와 해외동포의 귀국으로 인구는 증가하였으나 6·25전쟁을 겪으면서 130만 명의 인구가 감소하였고 전쟁후 출산붐(baby boom)현상으로 다시 인구가 증가하여 1950년에는 다시 2500만 명에 이르렀다.
- 1960년대부터 가족계획이 추진되고 경제성장으로 가치관의 변화와 여성의 취업기회의 확대로 출생률이 낮아져 인구가 안정단계로 접어들게 되어 최근 인구성장률이 약 0.7%인 선진국형의 인구 안정기가 되고 있다.
- 인구구조를 살펴보면 1960년대까지는 출생률이 높고 사망률이 높으며 유소년 층의 인구비율이 높은 형태로 나타났으나 2000년에는 출생률과 사망률이 낮아지면서 유소년 층은 감소하고 청장년 층이 많아지고 있다. 이런 추세로 나가면 2030년에는 출생률과 사망률이 더욱 낮아져 유소년 층의 비율은 더욱 감소하며 노년층의 인구가 증가하여 노령화 사회로 접어들게 된다.
- 인구 분포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인은 중심산업의 변화이다. 농업이 중심이었던 1960대 이전은 농업에 알맞은 환경을 가진 서남부 평야지대에 인구가 많이 분포했으며 상공업이 중심인 1960년대 이후는 경제활동에 편리한 대도시와 교통이 편리한 지역에 인구가 많이 분포한다. 현재 최고로 인구가 밀집한 지역은 수도권으로 2000년 기준 전국 인구의 44%를 차지하며 다음으로 남동임해지역인 대구, 포항, 울산, 부산, 마산, 창원 등이다. 농어촌 산간지역과 지방의 중소도시는 상대적으로 인구분포가 적다.
- 인구이동은 주로 정치·사회·경제적 요인에 의해서 주로 이동하는데 국내인구이동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6·25를 거치면서 대규모 인구이동이 나타났으며 1960년대 경제개발이 실시되면서 시·도간의 인구이동이 활발하며 지난 30여 년 간 인구이동률은 20%내외로 매우 높은 편이다. 앞으로는 선진국의 경우처럼 도시에서 농촌지역으로 내려가는 역도시화 현상도 예상된다. 본격적인 해외로의 인구이동은 1960년대에 접어들어 남미의 농업이민과 독일이 취업이민이 계기가 되었으며 오늘날은 주로 중국, 일본, 미국 등에 많이 거주하며, 지금은 모든 국가에 우리나라의 재외 국민이 거주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도시
- 고대국가의 형성과 함께 발달한 우리나라 도시는 정치와 행정기능이 중심이 되는 곳이 도시로 발전하였다. 조선시대에는 풍수지리설과 교통, 방어 등을 고려하여 도시가 발달하였으며 근대적 의미의 도시는 1876년 개항과 더불어 철도와 항만이 중심도시가 발달하였으나 이런 도시들은 일제의 식민지 활동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 1930년대는 일제의 대륙침략을 위한 병참기지화 정책으로 지하자원이 풍부한 북부지방의 흥남, 아오지, 나진 등의 도시가 발전하기도 하였다. 해방과 6.25를 거쳐 경제개발이 실시된 1960년대 들어와 이촌향도현상에 의해 수도권과 남동지역의 도시가 발달하였으며 1980년대는 수도권의 위성도시의 발달이 급속히 성장하면서 경제발전의 축인 경부축의 도시발달이 현저하고 그 외 지역은 도시의 성장이 미약하며 도시화의 진전으로 도시인구가 많이 증가하였다.
-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도시들은 대부분 정치·군사·행정을 중심으로 소비 도시적 성격을 아직 있었으나 근대산업의 성장과 더불어 종합기능 도시로 성장하였다. 이런 종합기능 도시에는 서울, 부산, 인천, 대구, 인천 등의 대도시이고 울산, 포항, 구미, 창원, 광양, 마산, 안산 등이며 정선, 장성, 화순, 태백 등은 광업도시이며 의정부 진해 오산 원주 등은 군사적 기능을 가진 군사도시이고 제주와 경주, 속초 등은 서비스 산업이 발달한 관광도시에 속한다.
- 1970년대 이후 우리나라의 대도시 주변에는 새로운 공간적 변화가 나타났는데 서울을 비롯한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 울산 등을 인구의 집중이 가속화되고 이로 인해 점차 대도시의 인구가 주변으로 팽창되면서 대도시권이 형성되었다. 최근에는 교통의 발달과 지가상승, 주택난, 환경의 악화로 대도시권의 중심도시에서 주변지역으로 인구와 공업기능, 소비기능 등이 이전되는 교외화 현상이 나타나고 이런 교외화 현상은 주요 간선도로를 따라 뚜렷하게 나타난다.
교통
- 우리나라에 근대적인 도로교통이 발달하기 시작한 것은 일제때 신작로의 건설부터이다. 1960년대 경제개발이후 유통량의 증대로 산업도로와 고속도로가 건설되면서 도로교통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 한편 철도는 1899년 건설된 노량진-제물포간의 경인선을 최초로 해서 이후 경부선, 경의선, 호남선, 경원선, 함경선 등이 완성되어 일제기간중에 국토를 X자형으로 연결하는 철도망이 형성되었다. 철도는 과거 화물과 여객수송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으나 최근 도로교통이 발달하면서 상대적으로 위축되었으나 정확성과 안정성으로 여객부분을 중심으로 비중이 높아지고 있으며 경부고속철도가 개통되면 철도의 비중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며 대도시 지역의 교통체계도 지하철과 전철, 그리고 경전철을 바탕으로 개편될 전망이다.
- 항공교통은 신속함과 소득의 증가를 바탕으로 장거리 이동을 중심으로 수요가 크게 증가하고 있으며 수상교통은 자연적인 제약으로 인해 내륙수운은 쇠퇴하였으나 1970년대 경제발달로 무역이 활성화되면서 해상수송은 그 비중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 으로 인해 내륙수운은 쇠퇴하였으나 1970년대 경제발달로 무역이 활성화되면서 해상수송은 그 비중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예로부터 봉수제라는 통신제도가 있었으며 1884년 우정국이 설치되어 근대적인 통신수단이 이용되었고 1896년 최초의 전화가 등장하여 지금까지 가장 중요한 통신수단으로 이용되어왔다. 최근에는 정보통신이 급격히 발달하고 정보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컴퓨터와 정보통신매체가 결합하여 정보유통면에서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 지역개발은 그 지역이 가지고 있는 자원을 최대한 이용ㆍ개발하여 생활환경을 개선하고 각종 산업을 활성화 시켜 보다 효율적인 국토공간을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우리국토의 나갈방향
- 지역개발은 그 지역이 가지고 있는 자원을 최대한 이용ㆍ개발하여 생활환경을 개선하고 각종 산업을 활성화 시켜 보다 효율적인 국토공간을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우리나라에서 지역개발이 논의된 것은 1960년대 이후이나 국토의 이용, 개발, 보전을 위한 장기적인 정책의 기본 방향을 제시하는 지역개발은 1971년부터의 국토종합개발계획부터이다.
- 제1차 국토종합개발계획은 산업단지조성, 고속국도 건설, 전력의 개발 등 주로 산업발전의 기반을 다지는 일에 중점을 두고 성장거점개발방식을 택하였으며 이로 인해 지역 간 불균형 성장과 서울의 과대도시 현상과 농어촌 지역의 침체 등 지역격차가 심화되었다. 1980년대에는 지역격차를 줄이고 지방화 시대에 부흥하기 위해 생활권 중심의 광역개발을 시도하였으나 수도권 지역에 투자가 지속됨으로써 국토개발의 불균형 문제는 개선되지 않았다.
- 1990년대에는 지역 간 균형개발을 위하여 지방 생활권 중심의 개발, 국민복지향상과 환경보전, 통일에 대비한 국토기반 조성 등이 추진되었다. 2000년대에 접어들어 추진되고있는 제4차 국토종합계획은 국토를 단순히 개발의 대상으로만 여기던 과거의 시각에서 벗어나 환경 친화적인 국토기반 조성과 동북아 교류의 중심지로 발전시킨다는 점에 역점을 두고 있다.